필라테스가 나에게 오도록.
당신은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나요?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몸이고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불편한 텐션이 생기는 게 몸인 듯 하다.
어쩌면 무엇을 배우고 가르치는가보다 우리는 어쩌면 환경조성의 미학을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환경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야말로 수련의 한 방법이라 생각되는데 뭐 나는 요가는 아직 배워본 적이 없어서 어떠한 비교는 불가하지만 다른 신체 수련 방법들도 잘 들여다보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앎과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전제하에 우리는 배우는 것이고 내가 안다는 오만한 전제 하에는 그 어떤 것이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앎이란 뭐 어떤 종류의 확신이라 하겠는데 그것에 도달함과 도달하지 못함은 본인 자신이 가진 것만큼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신체의 훈련과 마음의 수련을 포함한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본인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세계를 받아들이는 시간 또한 빨라지는 듯하다. 이는 또한 타협이 아니라 앎의 한 모양으로서 나에게 오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클래식 필라테스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 더 지식의 궁핍보다는 경험의 궁핍에 접근하게 되었고, 그 궁핍함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가져온 결과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냥 필라테스가 나에게 오도록 나는 환경을 조성하고 받아들임의 노력을 해야 했던 것인데 몸도 마음도 철없던 때는 그 또한 무지하여 힘들었다. 가끔 참으로 많이도 배우고 알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잘하려고 그 동작을 잘하려고 말 그대로 용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실 나는 그들에게 용쓰지 말고 환경조성에 애쓰라고 얘기해주는 편이다.
그게 근육이었던 , 찾아 헤매던 풀업이었던, 스트롱한 센터였던, 투웨이스트레치던, 본인이 찾으려고 하는 그것~~! 을 찾기보다 그것들이 나를 향해 올 수 있도록 환경의 조성을 하기 위해 내 몸에게 조금의 평화협정을 이루어냈을 때 보다 쉽게 평화롭게 나에게 다가오는 찐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어제 왔던 그것이 오늘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이요, 날아다녔던 어제와 달리 날개 추락한 천사가 된 오늘을 받아들이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일 터..
어찌 보면 그러한 attitude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고, 우리는 어쩌면 많이 알기에 어렵게 느끼는 게 아닐까? 결국 알기에 힘든 것인지 모르는 시절을 돌이켜보면 리포머타는 시간이 참으로도 즐겁기만 했던 듯하다. 많은 시간을 훈련하고 수련할수록 동작이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고 수퍼두퍼 엑서사이즈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자세, 앎이 확신이 서도록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과 무한한 믿음, 결국 그것이 나에게 올 것이라는 강한 signal을 찾는 것이 훨씬 험하고 힘든 여정이었던 것이더라.
그래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들이 참 많지만, 그냥 흘러가는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 것이 사실임은 우리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혹시라도 오늘 운동을 하다가 힘들어서 멈추고 싶을 때, 한 번쯤 생각해보자. 내가 필라테스를 배우는 주격이 아니라, 필라테스 그 자체가 나에게 다가오게 되는, 결국 내가 목적격이 되면, 그것이 주격이 되어 나에게로 다가옴이 이루어지도록 긴 호흡으로 환경을 만들고 다가설 때 배움의 여정,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반복되지 않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written by Kyung Hye, Sinclair
필라테스가 나에게 오도록.
당신은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나요?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몸이고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불편한 텐션이 생기는 게 몸인 듯 하다.
어쩌면 무엇을 배우고 가르치는가보다 우리는 어쩌면 환경조성의 미학을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환경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야말로 수련의 한 방법이라 생각되는데 뭐 나는 요가는 아직 배워본 적이 없어서 어떠한 비교는 불가하지만 다른 신체 수련 방법들도 잘 들여다보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앎과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전제하에 우리는 배우는 것이고 내가 안다는 오만한 전제 하에는 그 어떤 것이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앎이란 뭐 어떤 종류의 확신이라 하겠는데 그것에 도달함과 도달하지 못함은 본인 자신이 가진 것만큼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신체의 훈련과 마음의 수련을 포함한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본인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세계를 받아들이는 시간 또한 빨라지는 듯하다. 이는 또한 타협이 아니라 앎의 한 모양으로서 나에게 오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클래식 필라테스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 더 지식의 궁핍보다는 경험의 궁핍에 접근하게 되었고, 그 궁핍함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가져온 결과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냥 필라테스가 나에게 오도록 나는 환경을 조성하고 받아들임의 노력을 해야 했던 것인데 몸도 마음도 철없던 때는 그 또한 무지하여 힘들었다. 가끔 참으로 많이도 배우고 알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잘하려고 그 동작을 잘하려고 말 그대로 용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실 나는 그들에게 용쓰지 말고 환경조성에 애쓰라고 얘기해주는 편이다.
그게 근육이었던 , 찾아 헤매던 풀업이었던, 스트롱한 센터였던, 투웨이스트레치던, 본인이 찾으려고 하는 그것~~! 을 찾기보다 그것들이 나를 향해 올 수 있도록 환경의 조성을 하기 위해 내 몸에게 조금의 평화협정을 이루어냈을 때 보다 쉽게 평화롭게 나에게 다가오는 찐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어제 왔던 그것이 오늘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이요, 날아다녔던 어제와 달리 날개 추락한 천사가 된 오늘을 받아들이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일 터..
어찌 보면 그러한 attitude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고, 우리는 어쩌면 많이 알기에 어렵게 느끼는 게 아닐까? 결국 알기에 힘든 것인지 모르는 시절을 돌이켜보면 리포머타는 시간이 참으로도 즐겁기만 했던 듯하다. 많은 시간을 훈련하고 수련할수록 동작이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고 수퍼두퍼 엑서사이즈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자세, 앎이 확신이 서도록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과 무한한 믿음, 결국 그것이 나에게 올 것이라는 강한 signal을 찾는 것이 훨씬 험하고 힘든 여정이었던 것이더라.
그래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들이 참 많지만, 그냥 흘러가는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 것이 사실임은 우리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혹시라도 오늘 운동을 하다가 힘들어서 멈추고 싶을 때, 한 번쯤 생각해보자. 내가 필라테스를 배우는 주격이 아니라, 필라테스 그 자체가 나에게 다가오게 되는, 결국 내가 목적격이 되면, 그것이 주격이 되어 나에게로 다가옴이 이루어지도록 긴 호흡으로 환경을 만들고 다가설 때 배움의 여정,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반복되지 않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written by Kyung Hye, Sincl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