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lates people 5.
배움에 대한 단상
“자기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우기란 불가능하다” -에픽테토스
흔히 말하는 견습의 과정, 학생 apprentice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것은 일련의 업으로서 평생 배워 나가는 숙제를 짐으로 지고 살아가겠다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모르겠지만 몇 년차 지나가며 교육과 세미나의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필자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고 혹시나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어가며 경제적 시간적으로 혹은 인지적으로까지 무리하게 교육을 듣고 소화도 못시킨채 그 때 그 기분으로 나는 배움을 해 나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본 적도 있다.
지도자를 가르치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는 한국의 정서상 착실하게 꾸준하게 소화시키면서 한길을 채워가며 배우는 학생들보다 무언가를 많이 빠른 속도로 어떠한 결과물까지 이뤄내기를 바라는 우리의 살아온 환경이 정녕 깊은 배움이나 깨달음의 가치를 훼손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제 3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손쓸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가끔 많은 워크샵을 다니는 선생님들에게 왜 그렇게 많이 다니시냐고 물어보면, 무언가 스스로 가고 있는 길을 확인 받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며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독려 받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제법 계신 듯하다. 내가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남으로부터 무언가를 확인 받고 싶어 할까? 왜 그것을 주도적으로 찾지 못할까 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발견한 여러 이유들 중 하나는 결국 객관적 인지성의 부족이라고 느꼈다.
내가 서있는 자리와 방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면 지식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사용되거나, 혹은 그것을 단지 사용하기 위한 욕망으로 이해의 과정 없이 암기해 사용되어지고 버려지거나 혹은 그 자기합리화의 방향으로만 가려는 인간의 관성이 더 강하게 작용하면서 본인의 세계에 갇히게 되는 현상에 마주치게 되면 그것을 확인 받을 수 있는 곳에 가서만 확인을 받으려고 하는 .자기 확신과 자존감의 획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과유불급으로 자아도취까지 이른다면 아주 곤란한 상황까지도 만들어지겠지만 …
결국 우리가 어떠한 학습을 받아들이면서 어떤 에러를 만나고 또 수정하고 그런 과정에서 그것을 인지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지가 되어야만 스스로 받아들이고 수용함의 과정을 통해 타인의 관점과 지식과 경험을 온전히 다시 되새기며 재 훈련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더 깊은 지식의 세계로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의식적인 배움을 구분하며 그것의 체화를 통한 깨달음이야 말로 우리가 배움의 자세에서 잃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단 한 번도 어떤 워크샵을 들으러 다니면서 본인의 객관적 상황에 대한 대입을 해본적이 없다면 이 배움이 나에게 지금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알 리가 만무하다.
무조건적인 흡입이 아니고, 내 수준의 맞는 내 상황에 맞는 교육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노 라고 대답할 수 있는 본인에 대한 냉정한 사랑이 필요하다.
어느 교육을 받던 어느 세미나를 가던 분명히 느끼고 얻는 것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잘 가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자기 합리화 적인 해석인지, 본인을 조금은 불편하지만 옳은 길로 안내하기 위해 본인을 다시 돌아보고 지식에 대한 견습을 할 수 있는 과정인지에 대한 알아차림이 시급 해 보인다.
또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반을 가린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의견과 맞지 않으면 비난하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만 위로감을 얻으려는 유혹에서의 깨어남 또한 시급해 보인다.
먼 길을 떠나와서 단 2일의 세미나를 위해 지금 미국에 와있다. 필라테스 동작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소위 말하는 유명한 선생님들의 대부분의 워크샵이나 교육들도 필자도 참으로 많이도 다녔다. 스스로 이 주말을 오로지 위해 아이를 떨어뜨려놓고 클라이언트와 스튜디오를 내 세상에서 분리시켰어야 했다.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오는 길을 한없이 멀었지만, 노트에 남은 건 정말 의문의 물음표와 불확실한 지표에 대한 궁금증만 가득 남았지만, 그것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고 이-물음표를 해결하는 과정이 나에게 정말 어떤 영양제 이상의 양분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누구나 들으면 누가 저런 말을 못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그 모든 원리에는 내가 아직 겪고 체험하고 체화 하지 못했던 수많은 세상의 진리가 묻어져 있다. 그것은 아마도 아마도 아주 오래전 그 오래전 고대 시절과 하나도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을 깨닫은 작은 기적은 아주아주 불편하고 힘들지만 세상을 밝게 하는 측정 불가능한 가치인 것이다. 이 가치를 지금 이 순간에 알아차린 나를 스스로 칭찬하고, 과감히 이 어려운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또 하나도 다르지 않는 특별하지 않는 내일을 위해 잠자리로 들어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만나기 위해 또 평범함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해본다. 내가 아는 동작, 내가 아는 방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과감히 모르겠다, 어렵다, 불편하다라고 느끼는 그 길을 선택하라. 그곳에서 본인을 발견하고 본인의 필라테스를 찾아나가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배움의 길에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위해 내가 내 열정을 바칠 준비가 되었다면 그 하나를 위해서 돈과 시간과 열정을 바쳐도 좋다 라고 생각되는 냉정한 사랑과 객관적 인지가 생기기를… to us pilates people.
by KHS
Pilates people 5.
배움에 대한 단상
“자기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우기란 불가능하다” -에픽테토스
흔히 말하는 견습의 과정, 학생 apprentice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것은 일련의 업으로서 평생 배워 나가는 숙제를 짐으로 지고 살아가겠다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모르겠지만 몇 년차 지나가며 교육과 세미나의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필자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고 혹시나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어가며 경제적 시간적으로 혹은 인지적으로까지 무리하게 교육을 듣고 소화도 못시킨채 그 때 그 기분으로 나는 배움을 해 나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본 적도 있다.
지도자를 가르치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는 한국의 정서상 착실하게 꾸준하게 소화시키면서 한길을 채워가며 배우는 학생들보다 무언가를 많이 빠른 속도로 어떠한 결과물까지 이뤄내기를 바라는 우리의 살아온 환경이 정녕 깊은 배움이나 깨달음의 가치를 훼손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제 3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손쓸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가끔 많은 워크샵을 다니는 선생님들에게 왜 그렇게 많이 다니시냐고 물어보면, 무언가 스스로 가고 있는 길을 확인 받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며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독려 받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제법 계신 듯하다. 내가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남으로부터 무언가를 확인 받고 싶어 할까? 왜 그것을 주도적으로 찾지 못할까 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발견한 여러 이유들 중 하나는 결국 객관적 인지성의 부족이라고 느꼈다.
내가 서있는 자리와 방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면 지식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사용되거나, 혹은 그것을 단지 사용하기 위한 욕망으로 이해의 과정 없이 암기해 사용되어지고 버려지거나 혹은 그 자기합리화의 방향으로만 가려는 인간의 관성이 더 강하게 작용하면서 본인의 세계에 갇히게 되는 현상에 마주치게 되면 그것을 확인 받을 수 있는 곳에 가서만 확인을 받으려고 하는 .자기 확신과 자존감의 획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과유불급으로 자아도취까지 이른다면 아주 곤란한 상황까지도 만들어지겠지만 …
결국 우리가 어떠한 학습을 받아들이면서 어떤 에러를 만나고 또 수정하고 그런 과정에서 그것을 인지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지가 되어야만 스스로 받아들이고 수용함의 과정을 통해 타인의 관점과 지식과 경험을 온전히 다시 되새기며 재 훈련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더 깊은 지식의 세계로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의식적인 배움을 구분하며 그것의 체화를 통한 깨달음이야 말로 우리가 배움의 자세에서 잃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단 한 번도 어떤 워크샵을 들으러 다니면서 본인의 객관적 상황에 대한 대입을 해본적이 없다면 이 배움이 나에게 지금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알 리가 만무하다.
무조건적인 흡입이 아니고, 내 수준의 맞는 내 상황에 맞는 교육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노 라고 대답할 수 있는 본인에 대한 냉정한 사랑이 필요하다.
어느 교육을 받던 어느 세미나를 가던 분명히 느끼고 얻는 것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잘 가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자기 합리화 적인 해석인지, 본인을 조금은 불편하지만 옳은 길로 안내하기 위해 본인을 다시 돌아보고 지식에 대한 견습을 할 수 있는 과정인지에 대한 알아차림이 시급 해 보인다.
또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반을 가린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의견과 맞지 않으면 비난하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만 위로감을 얻으려는 유혹에서의 깨어남 또한 시급해 보인다.
먼 길을 떠나와서 단 2일의 세미나를 위해 지금 미국에 와있다. 필라테스 동작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소위 말하는 유명한 선생님들의 대부분의 워크샵이나 교육들도 필자도 참으로 많이도 다녔다. 스스로 이 주말을 오로지 위해 아이를 떨어뜨려놓고 클라이언트와 스튜디오를 내 세상에서 분리시켰어야 했다.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오는 길을 한없이 멀었지만, 노트에 남은 건 정말 의문의 물음표와 불확실한 지표에 대한 궁금증만 가득 남았지만, 그것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고 이-물음표를 해결하는 과정이 나에게 정말 어떤 영양제 이상의 양분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누구나 들으면 누가 저런 말을 못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그 모든 원리에는 내가 아직 겪고 체험하고 체화 하지 못했던 수많은 세상의 진리가 묻어져 있다. 그것은 아마도 아마도 아주 오래전 그 오래전 고대 시절과 하나도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을 깨닫은 작은 기적은 아주아주 불편하고 힘들지만 세상을 밝게 하는 측정 불가능한 가치인 것이다. 이 가치를 지금 이 순간에 알아차린 나를 스스로 칭찬하고, 과감히 이 어려운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또 하나도 다르지 않는 특별하지 않는 내일을 위해 잠자리로 들어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만나기 위해 또 평범함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해본다. 내가 아는 동작, 내가 아는 방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과감히 모르겠다, 어렵다, 불편하다라고 느끼는 그 길을 선택하라. 그곳에서 본인을 발견하고 본인의 필라테스를 찾아나가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배움의 길에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위해 내가 내 열정을 바칠 준비가 되었다면 그 하나를 위해서 돈과 시간과 열정을 바쳐도 좋다 라고 생각되는 냉정한 사랑과 객관적 인지가 생기기를… to us pilates people.
by KHS